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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379회   작성일Date 22-10-04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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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극의 현장에서 KBS 동지들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신에겐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必死則生, 必生則死 (필사즉생 필생즉사)” 1597년 백의종군하다 다시 통제사로 복귀한 이순신은 비장한 결의를 담은 장계를 선조에게 올리고 왜선 133척을 진도 앞바다로 유인해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명량 또는 울돌목, 전남 해남과 진도 사이에 위치한 이 바다는 병주둥이처럼 생겼는데 큰 물결과 커다란 파도가 좁은 협곡과 만나 방망이를 찧는 듯 한 격렬한 소리를 내며 울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400여 년 전 희망과 승리의 땅이었던 진도가 지금은 통곡과 비극의 땅으로 변했습니다. 해남과 진도를 이어주는 2진도대교를 넘어서자마자 <사고대책본부까지 12km>라는 대형 표지판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사고만 없었더라면 화창한 봄날 참으로 아름답고 고즈넉했을 진도 땅에는 무겁고도 비장한 침묵만이 감돌았습니다.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1. 진도군청

    범정부 사고 대책본부가 마련된 진도군청에는 대전 중계팀과 카메라감독님들, 그리고 순천에서 급파된 김광진 기자가 벌써 일주일 가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24시간 쉴 새 없이 돌아가던 특보체제가 풀리면서 다소 여유가 생기기는 했지만 여전히 한두 시간 간격으로 생방송 참여가 이어지면서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모습들이었습니다. 몰골은 처참했습니다. 식사는 알아서 교대로 때우고 있었고 잠은 한 평도 안 되는 중계차 안이나 군청 강당 등에서 그야말로 노숙을 하고 있었습니다. 최관영 감독님은 그래도 내일 교대인력이 오니 우리는 사정이 나은 편인데 다른 데가 걱정이라며 겸연쩍게 웃으셨습니다.

         

    2. 진도실내체육관

    실종자 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진도 실내체육관은 입구에서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대전 광주 등지에서 달려온 자원봉사자들이 체육관 바깥에 길게 천막을 치고 간단한 식사와 물, 음료수, 의약품 등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었고 체육관 입구에는 대형 전광판을 통해 뉴스속보가 계속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한켠에서는 개신교 신도들이 찬송가를 부르며 실종자들의 무사생환을 간절히 염원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스님의 목탁 소리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문정석 감독님을 비롯한 창원중계팀들은 마침 햄버거로 식사를 때우는 중이었습니다. 첫 마디가 이곳에선 웃지도 말고 울지도 말고 가족들과는 눈도 마주 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말할 수 없는 슬픔과 분노 좌절과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는 가족들에게 정부와 언론은 더 이상 신뢰할 수 있는 집단이 아니었습니다. 모 카메라감독은 화난 가족들에게 봉변을 당해 오른쪽 손목이 퉁퉁 붓는 부상을 입었고 트라이포드는 처참하게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체육관 내부에 설치돼 있던 중계카메라도 모두 철수할 수밖에 도리가 없었습니다.

         

    취재기자는 방송할 때에만 KBS 로고가 새겨진 점퍼를 입고, 체육관 안으로 들어갈 때는 다른 옷을 입는다고 말했습니다. 그 어떤 말도 그 어떤 행동도 가족들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음을 다들 잘 알고 있는 듯 했습니다. 춘천에서 오신 카메라감독님들은 사고 첫날 비가 오자 누군가(확인 결과 정상문 목포지부장)가 대형 야외천막을 쳐주는 바람에 방송 준비하기가 한결 수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 통곡의 바다...팽목항

    진도실내체육관에서 팽목항까지는 무료로 셔틀버스가 운행되고 있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내 새끼 있는 곳까지 가고 싶어 하는 가족들을 20분 간격으로 실어 날랐습니다. 팽목항에는 실종자 가족들과 구조요원, 정부 관계자, 자원봉사자들과 취재진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종일 붐비고 있었습니다. 기족대책본부 상황판에 또 다시 고지문이 나붙었습니다. 109, 110, 111, 112, 113번째 시신이 사고 해역에서 추가로 수습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다섯 명 가운데 남자 1명의 신원은 확인됐지만 학생으로 보이는 여성 4명의 신원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165cm, 귓불에 귀걸이자국, 왼쪽 허리에 반점, 오른쪽 새끼손가락에 붉은색 매니큐어 자국 등의 내용도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고지문을 살피던 몇몇의 눈에 속절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들을 실은 경비선은 저녁 7시 반쯤 팽목항에 도착했습니다. 삼엄한 경비 속에 임시 검시소가 마련된 하얀 간이천막 안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아들딸을 확인한 가족들의 처절한 통곡 소리가 들려오고 이를 지켜보던 수많은 사람들이 소리죽여 흐느끼는 처참한 순간이 하루에도 몇 번이고 반복됐습니다. 사고 발생 8일이 지나도록 해경 경비선을 타고 돌아 온 생존자는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중계차 앞에 설치 돼 있던 55인치 KBS 모니터가 박살이 났고 몇몇 촬영기자들은 가족들에게 린치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ENG촬영팀을 이끄는 임동수 반장은 일주일 넘게 면도를 못해 산적처럼 변해 있었고 조정석 기자는 수중촬영을 하다 다쳤는지 종일 다리를 절뚝거렸습니다. 혹시 있을 지도 모를 봉변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중계 카메라와 취재 기자는 버스 위에 올라가 방송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가 하나 가족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사고 첫날부터 계속 팽목항을 지킨 광주 중계팀의 김용근 감독도 힘든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4. 페리 선상 중계차. 진도 관제센터, 조도, 동거차도

    사고해역에 가장 근접한 페리에는 청주 중계팀, 본사 기자들과 광주, 목포 기자들이 투입됐습니다. 하루에 한번 작은 배가 육지와 페리를 오가며 음식과 장비, 그리고 교대 인력을 실어 날랐습니다. 진도 관제센터와 조도 등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생생한 현장 화면을 더 신속하고 더 선명하게 전달하기 위해 본사 중계기술국과 목포방송국 직원들이 연일 밤샘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고 동거차도에는 장축카메라와 송출장비 등을 직접 어깨에 메고 산꼭대기까지 올라가 천막을 쳤습니다.

         

    5. 목포 중앙병원, 서해 해양경찰청

    시신을 수습해 팽목항을 출발한 앰뷸런스는 1시간을 넘겨 달려 목포지역 병원들로 이송됐습니다. 11, 중앙병원에 투입된 전주 중계팀 동지들이 사고 발생 후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인근 식당에서 늦은 식사를 했습니다. 모처럼 심야시간대 중계차 연결이 없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원성권 감독님은 오늘은숙소로 잡은 인근 모텔에서 서너 시간이라도 잠을 잘 수 있게 됐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은 다음날 새벽 4시에 또 다시 특보 방송에 투입됐습니다.

         

    하지만 같은 시각 목포 서해해양경찰청에 투입된 부산 중계차는 여전히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자정을 넘어 한 번 더 중계차 연결이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주일 넘게 세 번이나 중계차 위치가 바뀌면서 이재권 감독과 윤정호 감독을 포함한 부산 중계팀들은 초죽음이 돼 있었습니다. 이재권 감독은 먹을 것은 됐으니 속옷 양말 수건을 지원해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중계카메라 앞에서 대기 중이던 창원 김소영 기자의 얼굴이 하염없이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어디 이들뿐이겠습니까? 보도본부 뉴스제작팀, 사회부, 재난과학부, 네트워크부, 본사 지원에 나선 지역기자들, 24시간 NS-1, NS-2를 책임지고 있는 보도기술국, 보도그래픽, 보도영상국, 그리고 긴급 편성된 특집 프로그램 제작에 여념에 없는 TV본부까지...동지들 모두가 힘든 내색하지 않고 벌써 일주일 넘게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구포 열차 탈선과 항공기 추락, 성수대교 붕괴와 삼풍백화점 붕괴 등 숱은 대형 참사들이 많았지만 이번처럼 참담하고 절망적인 경우는 없었습니다. 세상에 나서 제대로 피지도 못한 어린 아들 딸 수백 명이 사지를 헤맬 동안 도대체 대한민국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돈벌이에 급급해 온갖 불법을 일삼은 선주 일가와 인간이기를 포기한 선장과 선원들, 무능의 극치를 보여준 박근혜 정부, 그리고 취재경쟁에만 매몰됐던 언론들...선내에 대기하라는 말만 믿고 구명조끼를 입은 채로 옷장 밑에 쭈그리고 있던 어린 자식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억장이 무너집니다.

         

    사상 초유의 국가재난사태가 발생했는데 과연 공영방송 KBS는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말할 수 없는 슬픔과 비탄에 빠진 피해자 가족들과 국민들을 위해 공영방송은 과연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살인적인 근무환경 속에서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현장 동지들을 위해서는 또 무엇을 해야 할지, KBS노동조합은 깊이깊이 고민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 보겠습니다. 동지 여러분, 어렵겠지만 방송이 끝날 때까지 조금만 더 힘을 내 주십시오. 동지 여러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2014. 4. 23.

         

     - 단 한명의 생존자라도 구조됐다는 기적같은 뉴스를 간절히 고대하며-  

    사고현장에서 KBS노동조합 부위원장 이현진, 전주지부장 정재규,

    광주지부장 이창환, 목포지부장 정상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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